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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고대 그리스 음악 - 서양음악의 시작점 찾아보기

by 개성공장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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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들을 달래는 오르페우스

 

한 사람이 시를 쓰고, 노래를 짓고 연주하며 노래 부르던 시대

 

서양음악의 시작점을 찾는다면 그리스 음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음악뿐만 아니라 서양문화, 유럽 문화의 대부분의 면에서 그리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역사의 흥망성쇠 속에서 발생하고 허물어진 수많은 문명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리수 문명이 오랫동안 서양과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시작은 매우 오래전입니다. 기원전 2,500년 경부터 기원 무렵까지 지속되었습니다. 2,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리스 문명은 태동하고 발전하고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는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그리스 문화에서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폴로는 빛과 진리의 신이면서 동시에 음악과 시의 신이기도 합니다.. 디오니소스는 자연과 숲의 신이기도 하면 춤과 연극의 신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것은 뮤즈들입니다. 서양 어느 나라에서나 음악이라는 말로 쓰이는 '뮤직'(music-Musik-musica-musique)은 바로 뮤즈(muse)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뮤즈는 아홉 명인데, 그 하나하나가 음악과 시의 각각 다른 부분들을 관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스 문화에서 '예술'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었는지를 짐작케 해 줍니다.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으로는 기원전 8세기에 쓰인 호머의 <일리이아드>와 <오딧세이>에서 비롯됩니다. 주인공들이 악기를 타면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스 2천 5백 년 중에서 앞의 천오백 년의 음악에 대해서는 우리는 확실한 것을 알지 못하는 셈이지요. 그렇지만 피타고라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람들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인들에게 음악이 얼마나 중요했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음악은 한갓 여흥일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음악은 사람이 사람 되게 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것, 나아가서는 나라의 기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 신전

 

시와 노래가 한 덩어리

 

그리스 음악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작사자와 작곡가가 따로 있지 않은 채 오래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시를 쓰고, 노래를 짓고, 악기를 타며 노래까지 불렀던 것입니다. 요즘 같아서야 누가 그럴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시와 노래가 그만큼 가까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잘 모르겠다고요? 좀 더 설명해보죠.

 

우리나라 시에도 정형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7 - 5, 3 - 4조 해서 글자 수에 따라서 시에 리듬이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형시는 글자 수에 따른 규칙은 있지만, 그 글자 하나하나의 길고 짧음에 따르는 규칙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는 자를 짧게 발음하면 사람이 타는 말이요, 길게 발음하면 입으로 하는 말의 차이가 있듯이 긴 발음과 짧은 발음이 분명히 구별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긴 자나 잚은 자나 한 자로 취급해서 7 - 5, 3 - 4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 긴 발음들과 짧은 발음들을 변화 있게 짜 맞추는 규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3 박자, 4박자, 5박자 등등 다양한 박자를 가진 시가 쓰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여러 가지 틀을 갖춘 선율을 얹습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도 시조창을 할 때 평시조 선율에 여러 가지 가사를 얹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전부터 내려오는 선율을 갖다 붙이면 되는 식이죠. 시 속에 박자가 있고, 선율의 틀이 있으니 시를 쓴 사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연주할 때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적절히 변형시켜 나갔던 것이죠. 이런 걸 즉흥연주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와 음악이 따로 구별되지 않고 시가 곧 노래요, 노래가 곧 시였던 것입니다.

 

그리스 역사에는 '고전 시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부터 백여 년 계속되었으니까 그리스 문화의 마지막에 가까운 때였습니다. 이때쯤 되어서는 말과 음악이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악기 음악이 따로 연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는 그리스의 연극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리스 연극의 비극(tragaidia)이라는 말은 염소라는 말과 노래라는 말이 붙어서 된 말인데, 이것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 염소털을 뒤집어쓰고 노래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희극(Komoidia)이라는 말도 마을이라는 말과 노래라는 말이 합쳐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연극'이라는 예술이 따로 독립되어 있지만, 그리스에서는 시, 연극, 노래, 이런 것들의 경계가 애매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애매하다기보다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진 축제였던 것이죠. 요즘 말로 하면 종합예술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술의 종합적인 감흥이나 기능 얘기만 나오면 그리스의 연극이 들먹여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에 앞서서 풍요한 결실을 맺어주는 자연의 신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신을 위한 축제는 추수가 끝난 11월에 시작되어, 봄이 올 때까지 네 번씩이나 열렸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추수감사에서 시작하여 새봄, 자연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단이 있는 광장으로 악기 소리에 맞춰 모여드는데, 이 광장을 '오케스트러'(춤추는 곳)라고 하였습니다. 이 광장에서 노래하고 춤추다 보니 구경하는 사람들이 앉을자리가 필요해져 광장을 중심으로 반원형의 객석이 마련되고, 그 행사가 연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자 뒤에 무대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케스트러'라는 말은 차츰 무대 앞의 공간을 뜻하는 말로 바뀌게 되고, 나중에는 그곳에서 연주하는 악단을 일컫는 말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스의 연극은 이와 같이 신을 모시는 떠들썩한 노래와 춤의 축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점점 연극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는 동안에도 상당 기간 동안은 '노래로 하는 연극'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주인공들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동안 '오케스트러'에 남아있던 합창단은 노래를 하였던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이런 사실은 나중에 오페라가 탄생하게 되는데 중요한 힌트가 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유럽 문화에 큰 영향 끼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은 오늘날까지도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이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이 성행했던 이 고전 시기가 다 끝나 가던 무렵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에 앞선 플라톤은 벌써 축제적인 비극에 사용되는 음악이 너무 난잡하고 시끄러워 사람을 방탕으로 이끌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었습니다. 음악은 조용히 명상하는 요소가 앞서야 한다는 주장이었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는 더 실제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극 자체를 나쁘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연극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히 뚜렷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음악에 대해서는, 악기 연주자들이 너무 기교에만 흘러서 환상적이고 복잡한 음악만을 즐기는데, 노예나 동물들까지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축제 속에 들어 있던 음악, 연극 등의 요소들이 각기 독립하여 발전하고 있었던 '고전시대' 말기에 그가 살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모시는 신을 위해 건전했던 축제가 세월이 갈수록 환락 위주로 바뀌면서, 연극은 연극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흩어져서 각기 지나친 효과만을 노리는 것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던 시기에 그가 살았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뭔가 건전한 모습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글 속에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연극과 음악이 이렇게 갈라서게 되는 것이 꼭 나쁜 현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후 연극은 연극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유럽 세계에서 훌륭한 발전을 이루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현상이 그리스 문화가 몰락해 가던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 민족사회를 묶어 주던 중요한 예술이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니까요. 이렇게 되자 오늘날까지 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지 않는 훌륭한 그리스의 연극 작품들도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 극장

 

그리스의 문화는 앞서 말한 대로 유럽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술분야에서 그리스의 조각, 건축, , 연극 등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는 훌륭한 모범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각이나 건축은 그대로 남아있고, 시나 연극은 글자로 남아 있지만, 음악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 당시에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은 문명에 따라 너무 차이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그리스의 음악이 어떤 소리가 났을지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음악의 발자취를 찾아가기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로줄이 나란히 쳐진 다섯 줄 악보, 이른바 오선보(五線譜)에 익숙해 있고, 그 다섯 줄 악보로 음악의 구석구석까지 다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실제 연주에서 들을 수 있는 셈 여림의 미세한 차이를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정확한 빠르기를 기록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가수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다섯 줄 악보가 완전치 못하다는 것은 악보에 쓰인 수많은 악상기호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작곡가들은 음표만으로 기록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악상을 나타내는 말이나 기호로 표시해 두는데, 그것이 정확한 기록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다섯 줄 악보와는 다른 기록법을 갖고 있었던 그리스 음악은 오늘날에는 비슷하게나마도 다시 만들어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음악에 관하여 쓰인 많은 이론들이 후세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왔을지 모르는 그리스 음악이 조각이나 연극처럼 남아있지 않고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음악은 그런 것인걸 어떡합니까? 오늘날에는 좋은 음악은 레코드나 테이프로 그대로 기록해서 두고두고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음악이 한번 아름다운 소리를 울려 냈을 때의 '바로 그 음악'은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음악은 순간순간마다 더욱 귀중한 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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