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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도서 리뷰] 정유정 - 완전한 행복, 내 주변의 사이코패스가 생각나 무서웠던.

by 개성공장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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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소설 속 화자에 대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번듯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자가 발생했고 어른들이 집값 떨어질까 봐 싸우는 동안 어린이는 옥상 위의 민들레꽃을 보았고 그런 얘기를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못하는 그런 내용(박완서, 옥상 위의 민들레꽃)과 함께 배웠던 것 같다.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이기심을 대조하여 어른의 비판점을 부각하는 그런 기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책의 시작은 지유, 서술 대상인 유나의 딸이다. 지유는 자신의 엄마가 무엇을 잘 '요리하는지' 얘기하면서 도축용 칼과 그 순서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냉장고에 오늘 사다 놓은 돼지고기 앞다리살 제육을 떠올렸고, 요리하지 못하고 상한 상태로 버리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욕심 많은 어른과 순수한 어린이의 동화적인 대비는 없다. 가해자로서의 어른과 피해자로서의 어린이, 포식자와 피식자, 학대자와 피해자가 대비된다. 그리고 포식자 앞에서는 다른 어른들도 어린이처럼 그냥 피해자가 된다.

 

책은 분명히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그래서 더 소름 끼친다. 소설 속 인물과 실제 범죄자가 동일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소름이 끼치는 것은 소설에서 재인을 화자로 하여 묘사한 유나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진심으로 자기가 피해를 봤고, 그래서 자신의 가해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 논리와 정의의 잣대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물론 선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도 가르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선한 이들은 알고 있다, 타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없고, 조종해서도 안되며 서로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 작가의 말 -

작가의 전작인 종의 기원에서도 포식자로서의 인간이 나왔던 것 같은데 조금 먼 얘기 같고 서늘한 느낌만 남고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면, 이번 책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책 속의 유나 같은 사람은 실재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3명 이상인 곳에서는 높은 확률로 유나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쥐고 흔들고 욕심부리면서 '원래 내 것이다'라는 말로 입을 막고, 정말 사이코패스인데 연 끊을 수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부모님은 약점 잡힌 것처럼 절절 매고 형제들을 차별 대우하면서도 정당방위라고 생각하고 피해받는 자식들은 '나는 착한 아들 혹은 딸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곤란하지 않게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가만 닥치고 있게 된다. 그래서 피할 방법이 없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높은 기준이 있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부양해줄 배우자 및 직계존속이 없어 고소득자가 아닌 바에야 결국에는 아프기라도 하면 형제에게 그 부담이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형제들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우리는 같은 배에서 난 형제이고 천륜을 끊을 수 없다'는 말이 족쇄처럼 남아 있어 착한 아이처럼 또 선행을 베풀 것이고 영영 복수하지 못할 것이다. 답답한 일이라도 어쩔 수 없다. 유나는 정말 대단히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살인자이며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스트여서 어떻게든 멀어져 있는 게 당연하게 보이지만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사람들은 그 정도까지 범죄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의 거짓말과 과장으로 사람을 감정적으로 착취하고 교묘하게 가스 라이팅 해도 폭행과 사기가 동반되지 않는 한 범죄는 아니다. 그리고 착취당하는 형제는 가스 라이팅이 누적되어 있어 성인이 되고 중년이 되어도 벗어나지를 못한다. 

 

흔히 자아도취형 인간을 나르시시스트라 부르지만,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의미가 좀 다르다. 통념적인 자기애나 자존감과도 거리가 있다. 덧붙이자면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다.
- 작가의 말 -

 

어떻게 사이코패스를 이길 수 있나? 이길 방법은 없다. 그저 사이코패스가 내 주변에 없거나 혹은 나를 먹잇감으로 점찍기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일단 사이코패스의 목표물이 되면, 당하는 사람은 스스로 올무에 들어가게 되고 어떤 조언도 듣지 않는다.

 

책에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유나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조금씩은 그렇다. 아주 매운맛의 유나가 있고, 조금 덜 매운 어머님들, 그리고 심지어 노아도 그렇다. 책을 다 읽고 누가 제일 피해자인지 생각해봤다. 엄마에게 학대당한 지유? 살해당한 피해자들? 가장 가까이에서 지속적으로 후려쳐진 언니? 순위를 매기는 것이 의미가 없다. 결혼이야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스스로를 탓할 수야 있지만 그런 부모에게 자라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대단한 사이코패스들은 정말로 자신을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였기 때문에, 당한 사람만 억울하게 된다. '아니 너무 매정한 거 아냐? 아니 멀쩡한 분이던데 왜 이렇게 예민해?' 등등.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아마도. 유나는 경찰에 잡혀가면 정말로 자극적으로 소비되었을 범죄자 타입이므로 자신이 전시되는 것을 막았고, 후유증이야 어쨌든 피해자 몇몇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피해자(재인, 지유) 간에 연대가 나오는 부분이 가장 좋은 부분이었다. 만약 당신이 '아니 지금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지 않고 뭐 하는 거야! 범인부터 잡아야지'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경찰 조직은 관료 조직이고 나를 위해 대기 타고 있지 않으며 당신부터도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실제가 맞는지 확인하느라 늦게 움직일 것이며, 그리고 소설은 '전지적 시점'으로 읽기 때문에 일 순서가 정리되지만 당신이 만약 같은 일에 휘말린다면 사건의 순서를 정리할 수도, 이를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도 없고, 만약 전달한다 해도 상대방은 왜곡해서 듣거나 아니면 이해 자체를 못할 것이다. 사이다 전개가 아니라 실망한다면 당신은 웹소설을 끊어야 한다. 세상은 웹소설처럼 당신을 중심으로 당신만 좋게 흘러가는 판타지가 아니다.

 

역시, 소설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취소해야겠다.

모두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강탈당했고 그 피해는 복구될 수 없으므로.

 

작가는 얄짤 없이 첫 장부터 '안녕 이건 스릴러고 오늘은 고기가 아닌 인간을 다지는 사람이 나올 거야 하하'라고 이야기한다. 친절한 일이다. 상상력이 좋은 사람은 초반에 읽고 간을 본 뒤 바로 덮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끝까지 읽으면 모골이 송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룸메이트는 내가 책 읽으면서 중간에 한숨을 쉬는 걸 보더니 줄거리에 대해 듣는 것을 거절했다. 정말 무서운 내용이었다. 귀신 나오는 흉가야 안 가면 되고 안개 끼는 도시야 햇볕 쨍쨍한 곳으로 여행 가면 되고 전화 안 통하는 오지는 환경 보호를 위해 갈 생각도 안 하면 되지만 사이코패스는 어디에나 있으며 우리와 함께 있고 그 존재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착하게 살고 지옥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지옥엔 분명히 유나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지옥의 간수 노릇을 하며 지옥을 더 지옥답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교훈

1.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그 주변을 아예 피하라. 싸우지 마라. 절대 이길 수 없다.

2.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과 단절될 수 없다면 의사소통하는 횟수라도 줄여라

3.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에게는 선행을 베풀지 마라. 사이코들은 호의를 최대한 나쁜 것으로 어떻게든 변조시켜 오히려 선행을 베푼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4. 인간관계에 대해서 절대적인 관계는 없고, 언제라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끊긴다고 하더도 인생의 실패는 아니다.

5. 민서기는 고기를 다져 소시지 따위를 만들 때 쓰는 기계 이름이며 믹서기와는 다른 것이다. 오타 아님.

6.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하며 절대로 폭력을 쓰면 안 되고 언어폭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OO 이는 이마트에서 살아. 엄마는 집에 갈게' 혹은 '너 이렇게 말 안 들으면 보육원 보낸다. 걔네가 얼마나 불쌍한 애들인지 아니' 이런 거 금지.

7. 상처 받은 어린이는 상처 받은 어른이 된다. 나이가 상처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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